[歷史칼럼] 길 위의 호남 선비 -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 (9)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기사입력 2018/05/03 [20:07]

[歷史칼럼] 길 위의 호남 선비 -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 (9)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입력 : 2018/05/03 [20:07]

 

▲     © 뉴스24


윤선도, 병진소를 올리다.(3)

 
이어서 윤선도는 이이첨이 이원익 · 이덕형 등을 내쫓는 것에 대하여 직언한다.  
 

“이원익은 우리나라의 사마광이며, 이덕형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 바친 사람이며, 심희수는 비록 대단한 재능과 덕망은 없습니다만 우뚝하게 소신을 가지고 굽히지 않은 사람이니 또한 종묘사직에 공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이 모두 삼사(三司)를 사주하여 끊임없이 논집해서 잇따라 귀양을 보내고 내쫓게 하였습니다.”


이원익(1547∼1634)은 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로서 임진왜란 극복에 앞장 선 재상이었고, 광해군이 즉위하자마자 영의정으로 임명될 정도로 신망이 높았다. 그러나 이이첨이 사주한 폐모론에 반대하였다가 1615년에 유배를 갔다. 이러한 이원익을 윤선도는 우리나라의 사마광(1019∼1086)이라 하였다. 사마광은 송나라 신종 때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다가 14년간 은거하였고 철종이 즉위하자 재상에 올라 신법을 폐지시킨, 군자의 풍도가 있고 일생을 광명정대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1)
 

이덕형(1561∼1613)은 이항복(1556∼1618)과 함께 임진왜란 공신이고  광해군 때 영의정을 했는데 1613년에 영창대군 처형에  반대하였다가 삭탈관직 당한 후 고향집에서 울화병으로 죽었다. 2)

 
이제 상소문은 유희분(1564∼1623)과 박승종(1562∼1623)을 향한다. 이들은 이이첨과 함께 삼창으로 불리는 실세였다. 3)
“유희분과 박승종은 집안을 단속하지 못하고 몸가짐을 엄하게 하지 않으니, 참으로 하찮고 용렬한 자들입니다. 이이첨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바른 말로 논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지 아니하니, 참으로 겁 많고 나약한 자들입니다. (중략)


아, 이이첨의 도당이 날로 아래에서 번성하고 전하의 형세는 날로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어찌 참으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전하를 위하여 말을 하는 자가 없습니다. 아, 우리나라의 300개 군에 의로운 선비가 한 사람도 없단 말인니까. (중략)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이 앞뒤로 올린 글을 자세히 살피시고 더욱 깊이 생각하시어, 먼저 이이첨이 위복을 멋대로 농단한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에 유희분과 박승종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소서.


상소의 마지막 부분은 부친 윤유기 걱정이다. 자칫하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음을 감안할 때 윤선도는 착잡하였다. 


전하께서 신의 말을 옳게 여기신다면 종묘사직의 복이요 백성들의 다행일 것이며, 비록 옳지 않다고 여기시어 신이 죽게 되더라도 사책(史冊)에는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신은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다만 신에게는 노쇠하고 병든 늙은 아비가 있는데, 이 상소를 올리는 신을 민망하게 여겨서 온갖 말로 중지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신이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치를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또한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의 아비는 상소를 중지시키면 나라를 저버리게 될까 염려되고, 그대로 들어주자니 아들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쌍하여 우두커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상소를 올림에 미쳐서는 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용감하게 결단을 내리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 보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인자하신 성상께서는 비록 신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리시더라도 신의 늙은 아비에게까지는 미치지 않도록 하시어, 길이 천하 후세의 충신과 효자들의 귀감이 되게 하소서. 참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바라는 바입니다. (중략)


신이 조정의 격례(格例)를 알지 못하여 말이 대부분 차서가 없으니 더욱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1) 한편 사마광은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꼽히는 『자치통감(資治通鑑)』 편찬자이기도 하다.

2) 이항복과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3) ‘삼창’은 광해군 시대의 실세인 광창부원군 이이첨, 밀창부원군 박승종, 문창부원군 유희분을 말한다. 한편 유희분은 광해군의 처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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