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장성 문화원 문화탐방

영주소수서원 탐방- 김 종용(전 장성군 노인회장) (2019. 11.19.)

뉴스24 | 입력 : 2019/12/04 [23:41]

▲     ©뉴스24

 장성군 문화원회원에서는 문화탐방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김봉수원장의 인솔 하에 관광버스 2대를 대절하여 기쁨에 찬 기분으로 08시10분
출발이다. 장성문화원 에서는 매년 회원들에게 2회씩 문화탐방을 실시하며 타 지역의 우수성을 배우고 우리를 새롭게 조명해보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는 회원들의 지식함양과 장성문화원의 회원 간에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하여 실시하는데 이번 탐방은 서원문화 탐방으로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을 찾아 배워 보자며 인사말을 하였다.
이번 탐방 지는 경상북도 영주시로 대단히 먼 거리에 위치해있다.
관광버스 2대를 대절하여 대구 쪽을 향하여 88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88고속도로가 전에는 2차선으로 굴곡도 많아 속도가 느렸는데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막힘없이 잘도 달린다. 담양을 거쳐 함양, 거창, 고령, 달성, 대구시를 통과하니 이제 북쪽으로 계속 오른다. 오르다보니 우측으로 안동시를 스치는데 안동은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안동 땜에 월영교 등을 머리에 그려보며 목적지 영주시에 도착하였다. 그러니까 영주시는 경상북도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영주와 인접지역으로는 동북쪽엔 강원도 태백시가 있고 서북 쪽 으로는 충북 단양이 위치해 있으니 장성에서 영주까지는 멀고 먼 거리다, 버스가 4시간을 달려 왔으니 장성에서 서울 가기와 비슷한 거리다. 고속도로가 아니면 가볼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곳을 찾았으니 어려운 문화탐방의 행사로 집행부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영주 지역은 소백산맥이 뻗어 내린 산간지대로 큰 들녘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12시 10분에 목적지 영주에 도착하니 예약된 식당으로 안내되어 점심을 맛있게 들고 관광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곳 소수서원을 답사하며 설명을 들어본다. 소수서원은 사적 제 55호로 지정된 곳이다.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周世鵬)선생이 고려 말 안향(安珦)선생의 연고지에 조선 중종 37년(1542) 선생의 사묘(祠廟)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해에는 학사를 건립하여 백운동 서원을 창건 하였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과 국가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로 인해 1550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어 국가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들의 정치사회 활동에 중심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명종5년 (1550)민족 교육의 산실로 풍기군수로 부임했던 주세봉이 이곳출신 안향(安珦)선생을 배향하였다. 그리고 명종5년(1550)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사액을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 기관(한국최초 사립 대학교)으로 퇴계선생의 제자 대부분을 포함하여 4천여 명의 유생들이 배출되었다. 이곳에 주향된 안향(1243-1306) 선생은 도첨의 중찬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 학자이시며 동방 신유교의 비조이시다. 관광해설 사는 경내를 돌면서 산골물이 흐르는 곳에 백운동(白雲洞) 경(敬)자 바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경(敬)자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시냇가 바위에 새겨진 경(敬)자는 주세봉이 직접 써서 새긴 것으로 신재 집에 전해오며 유교 근본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의미로 주세봉이 편찬한 백운동 서원에 관한 고서인 죽계지(竹溪誌)에 보면 일찍이 이르기를 경(敬)은 구차함의 반대됨이니 잠깐이라도 구차하면 이는 곧 불경(不敬)이다 하였는데 이는 회헌(晦軒) 회웅(晦翁)과 부합되는 것임으로 더욱 새기지 않을 수 없다. 묘원(廟院)은 비록 오래 보존 하지 못하더라도 이 각석이 마멸되지 않아 천년 후에 이곳을 일컬어 경석(敬石)이라 하면 그것으로 족 하다라고 기록 되어있어 경자바위의 유래를 전한다. 이곳 소수서원의 현판은 유형문화제 (제330호)로 퇴계 이황의 건의로 명종이 대제학 신광한에게 짖게 하여 친필로 사액(賜額)한 현판이다. 경내에는 강학당 장서각 일신재 직방재 학구재 등 옛 건물들이 있으며 국보 111호인 회헌 초상화 보물5점 등의 많은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한국서원은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에 등재가 결정된 '한국의 서원'은 성리학을 발전시키고 후학을 양성한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한국 서원은 지난 1543년(중종 38년) 건립한 백운동서원(현재 소수서원)이 효시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주세붕이 1541년(중종 36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뒤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세웠다.
이후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서원을 건립했고, 18세기에는 400여 곳을 운영했다. 성격이 비슷한 '사우'를 포함하면 그 규모가 1000여 곳에 달한다. 한국 서원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이상적 지식인을 양성했다. 지역의 대표적 성리학 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하거나 지역사회 공론을 형성했다.
성리학자들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성리학적 가치관을 통해 세계를 이해했고, 정기적인 제향을 통해 학파 결집을 도모했다.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 활동도 주도했다.
왼쪽부터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문화재청 제공) 이런 서원 중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건립한 9개소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서원들은 성리학적 이상 실현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였고, 한국적으로 진화한 유학교육 시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각 서원의 특징을 살펴보면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년 건립)은 한국 최초 서원이다.
 한국 서원의 강학, 제향과 관련된 규정을 최초로 제시해 이후 건립한 서원에 영향을 줬다.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년)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한 서원으로, 지역 사림들에 의해 설립한 최초 사례다.
 건축적으로는 한국 서원의 정형적인 배치 방식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3년)은 출판과 장서 중심기구로서 역할을 정립 했다. 건축적으로는 서원 앞에 누마루를 도입해 회합과 유식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년)은 서원이 학문과 학파 중심기구로 한국 서   원의 발전 과정을 입증한다. 탁월한 자연 경관이 일품이다.  
 서원 일대 경관을 묘사한 다양한 작품들도 남아있다.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년)은 한국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남부 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한다.
 기록물을 통해 서원의 경제적 운영방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왼쪽부터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문화재청 제공) *대구 달성 도동서원(1605년)은 서원 교육 방식의 구체적인 양상을 입증한다. 경사지를 활용한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했다.
*경북 안동 병산서원(1613년)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만인소 등 사림 공론 장으로도 확대된 사림 활동의 중심지다.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년)은 서원 발전 과정에서 성리학 이념이 지역   단위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확대되는 단계에 속한다.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년)은 성리학 실천 이론인 예학을 한국적으로   완성한 거점이다. 예학은 예의 본질과 의의, 내용의 옳고 그름을 탐구   하는 유학의 한 분야다. 예학의 거두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그의 사상을 잇기 위해 돈암 서원을 창건했다.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한국의 서원'은 성리학을 발전시키고 후학을 양성한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은 사적 제55호로 1541년 (중종36)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 이곳출신 유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를 건립하였다. 1543년 유생들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 서원을 설립한 것이 서원의 효시이다. 성격이 비슷한 '사우'를 포함하면 그 규모가 1000여 곳에 달했다. 한국 서원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이상적 지식인을 양성했다.
지역의 대표적 성리 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하거나 지역사회 공론을 형성했다. 성리학자들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성리학적 가치관을 통해 세계를 이해했고, 정기적인 제향을 통해 학파 결집을 도모했다.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 활동도 주도했다.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문화재청 제공)이런 서원 중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건립한 9개소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서원들은 성리학적 이상 실현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였고, 한국적으로 진화한 유학교육 시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영주지역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대로 다툼이 빈번 했고 특산품으로는 풍기 인삼이 유명하다.

각 서원의 특징을 살펴보면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년 건립)은 한국 최초 사액서원이다.
한국 서원의 강학, 제향과 관련된 규정을 최초로 제시해 이후 건립한 서원에 영향을 줬다.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년)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한 서원으로, 지역 사림들에 의해 설립한 최초 사례다.
건축적으로는 한국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방식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3년)은 출판과 장서 중심기구로서 역할을 정립했다. 건축적으로는 서원 앞에 누마루를 도입해 회합과 유식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년)은 서원이 학문과 학파 중심기구로 발전하는 한국 서원의 발전 과정을 입증한다. 탁월한 자연 경관이 일품이다.
서원 일대 경관을 묘사한 다양한 작품들도 남아있다.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년)은 한국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남부 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한다.
기록물을 통해 서원의 경제적 운영방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왼쪽부터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1605년)은 서원 교육 방식의 구체적인 양상을 입증한다.
경사지를 활용한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했다.
경북 안동 병산서원(1613년)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만인소 등 사림 공론 장으로 도 확대된 사림 활동의 중심지다.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년)은 서원 발전 과정에서 성리학 이념이 지역단위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확대되는 단계에 속한다.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년)은 성리학 실천 이론인 예학을 한국적으로 완성한 거점이다. 예학은 예의 본질과 의의, 내용의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다. 예학의 거두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그의 사상을 잇기 위해 돈암 서원을 창건하였다.

우리일행은 소수서원 탐방을 마치고 13시50분 출발하여 14시05분에 오늘 마지막 탐방 코스인 영주시 봉황산에 자리한 부석사(浮石寺)를 찾았다. 의상대사가 새운 부석사는 서기 676년 신라 문무왕16년 의상 대사께서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사찰로 삼았다.
소백산맥 줄기인 위치해있기에 큰 산 중간지점에 멀리에서도 보인다.
이곳부석사에 주요 문화제로는 국보 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과 국보45호인 소조여래 좌상 그리고 국보 46호인 영주부석사 조사당벽화이다.
서기 676년(문무왕 16년) 2월에 의상(義相)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에도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그럼 장성 백양사는 서기632년 백암사로 출발 1574년에 현재의 백양사로 개칭되어 전해도고 있으며 소요대사 부도가 보물1점으로 1346호로 전해오고 있다. 부석사는 한문으로 뜰 부(浮)자 돌석(石)자로 돌이 떠있다는 의미에서인지 사찰까지 계단이 너무 많아 큰 산 중간쯤 위치해 있어 나이든 분들은 오르기가 매우 힘든 코스이다. 불편한 몸이지만 다시 오기 어려우니 걷기를 강행 일행들의 뒤를 따랐다. 많은 분들이 마지막 코스에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셨으나 그래도 먼 길을 여기까지 왔으니 많은 분들이 끝까지 오르는 모습들이 문화원 탐방의 의의가 극기에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고 건물하나를 보고나면 그 옆의 건물이 살며시 보이는 형식으로 조화와 절재를 보여주는 사찰이다.
이곳 부석사는 2015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 대사가 창건한 절로서 천년의 숨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상쾌한 균형과 절재가 있다는 예찬을 받고 있다. 무량수전은 사뿐히 고개를 쳐든 지붕의 추녀곡선을 주며 추녀와 기둥이 조화 되어 간결하고 절제된 주심으로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무데에서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무량수전의 기둥이 기대서서 소백산 부석사의 울타리인양 마당 안으로 들어와 멀리 눈 아래 보이는  풍광은 가히 희열을 느껴볼만한 풍광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나 노인들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들어 조심조심 하는 모습들이다. 한분도 사고 없이 전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문화원에서 준비한 술과 안주 음료수를 풍족하게 차려 맛있게 들고 귀향길에 올랐다.
오후 3시 40분 출발이다. 중간 군위를 거쳐 환히 트인 고속도로를 달려 지리산 휴게소에 오후 6시 45분 도착이다. 이제 어둠길로 담양을 거쳐 장성 터미널에 저녁8시10분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번 2일간의 문화탐방을 문화가족 모두는 한국 최초 서원인 경상북도 소수서원과 국보가 3점 있는 부석사를 보람되게 탐방을 했음을 기쁘게 여기며 김봉수 원장님 이하 최 국장님 이 간사님께 수고했음에 고마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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