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기행]도쿄기행 3 : 메이지 신궁에서(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뉴스24 | 입력 : 2019/01/24 [17:48]

 메이지 신궁 입구에서 본전으로 가는 길은 새해라서 사람들이 많다. 조금 걸어가니 길옆에 와인과 청주 통이 있다.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청주는 일본 양조업체에서 기증 받은 것이란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음식혁명이 일어났다. 1871년 12월에 메이지 천황은 1,200년 동안 금지한 ‘육식해금령(解禁令)’을 내렸고, 1872년 1월24일에 천황은 대신들과 함께 소고기를 먹었다. 한 달 쯤 되는 2월18일에 열 명의 자객이 천황 거처에 난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4명은 현장에서 사망, 1명은 중상, 나머지 5명은 생포되었는데 범행 동기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천황이 소고기를 먹어 일본정신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이다. 천년의 전통을 일시에 팽개치고 외세에 눌려 육식을 하여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요리는 대세였다. 소고기 전골, 돈가스로 일본 식탁은 더욱 풍성해졌다. 메이지 천왕은 와인도 좋아했다. 마치 고종이 커피를 좋아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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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신궁 가는 길의 와인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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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신궁 가는 길의 청주 통

 

조금 더 걸어가니  액년(厄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거기에는 액년에 해당하는 남자와 여자의 나이가 적혀 있다. 그리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사찰과 신사를 참배하는 ‘액막이풍습’이 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신사에서 이런 플래카드를 여러 번 보았는데 그것이 액막이 풍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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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액년 플래카드

 

신궁 본전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밀려서간다. 일본인들은 새해 연휴(1.1-1.3)에 신사나 절에 가서 복을 빌고 액을 없애달라고 참배를 하는 ‘하츠모우데(初詣)’라는 풍습이 있단다. 그리고 보니 2일에 간 야스쿠니 신사나 와세다 대학 입구의 절, 그리고 도고신사에서도 일본인들이 줄지어 참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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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본전 가는 참배객들

 

이윽고 남신문(南神門) 앞에 도착했다. 문 위 오른편에는 “除災招福(제재초복) 家內安全(가내 안전)”이라고 적혀 있다. 재난을 제거하고 복을 부르며, 집안이 안전하기를 비는 문구이다. 왼편에는 ‘迎春(영춘)’이라고 적혀있고 멧돼지가 새끼들과 같이 있는 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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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남신문 위의 기원문 

 

남신문을 통과하여 본전 앞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메이지 신에게 기원한다. 어떤 이는 동전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참배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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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본전의  참배객들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966년에 일본 정부는 메이지 시대는 ’세계를 고무시킨 장거이며 휘황찬란한 시대’로서 발전도상에 있는 이웃의 여러 나라들에 새로운 국가창조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메이지 백년 축제를 준비한다고 했다 2)

 

1868년 1월3일에 왕정복고와 함께 친정을 한 메이지 천황(1852∽1912)은 1912년 7월30일 서거 때 까지 45년간 일본을 통치하면서 일본을 ‘서구 열강 대열(大國屈起)’에 올려놓았다. 즉 아시아 유일의 자본주의 국가‘대일본제국’으로 태어나게 하였다. 

 

요컨대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봉건 잔재를 없애고 일대 개혁을 한 메이지 정부는 부국강병 ·식산흥업 · 문명개화 3대 정책을 단기간에 실현했다. 

눈 여겨 볼 것은 1871년 11월부터 1893년 9월까지 23개월간 미국과 유럽을 방문한 이와쿠라 사절단이다. 3)

 

(계속됩니다)

1) 일본인들은 이번 연휴 중 300만 명이 메이지신궁을 찾았다.   

2) 고토 야스시 외 지음, 이남희 옮김, 천황의 나라 일본, 예문서원, 2006, p 147 (이 번역서의 원제는 ‘천황제와 민중(1976년 발간)’이다)

메이지 통치 45년 동안 일본은 놀랄만한 발전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경이적인 발전은 일본 민중의 정치적 무권리와 경제적 빈곤, 조선과 중국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 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 한 국가의 관점만이 아니라 민중과 아시아 민족과의 관련 속에서 살펴보면, 메이지 국가는 전제주의 · 군국주의 그리고 침략주의를 국시(國是)로 하는 전제국가였다. (위 책, p 147-148)

3) 왕지아평 외 7인 지음, 양성희 ·김인지 번역, 대국굴기, 크레듀, 2007

2006.11.13-11.24까지 중국 CCTV에서 방영된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국굴기’(12부작)는 2007.1.20-2.10까지 EBS에서도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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