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칼럼]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다. (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뉴스24 | 입력 : 2018/12/10 [11:54]

 2018년은 임진왜란(1592-1598) 7년 전쟁이 끝난 지 7주갑(420년)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을 다시 생각한다.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다. 조짐을 알았지만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전쟁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아예 무시했다.

 

▲     © 뉴스24


1591년 3월, 일본을 다녀 온 조선통신사는 선조를 접견했다. 정사(正使)는 황윤길, 부사(副使)는 김성일, 서장관은 허성이었는데, 이들은 1590년 7월22일에 교토에 도착하여 11월7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1591년 1월에 귀국했다.


황윤길과 김성일은 선조에게 엇갈린 보고를 했다. 황윤길은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라고 아뢰었고,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된다.’고 말했다. 1)


선조가 ‘수길이 어떻게 생겼던가?’고 묻자,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 할 위인이 못된다고 일축했다.  


류성룡이 선조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 김성일에게 물었다.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김성일은 “나도 어찌 왜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될까 두려워 그것을 풀어주려 그런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조선통신사의 엇갈린 보고로 조정은 논란이 분분했다. 당시는 동인이 집권당이었기에 대세는 김성일에게 기울었고, 동인은 ‘서인들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인심을 동요시킨다.’고 공격했다. 마침내 선조는 ‘전쟁이 없다.’고 결론내리고 이를 국론(國論)으로 정했다.


불행하게도 1년 뒤인 1592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김성일은 ‘전쟁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없다’고 단언하여 ‘부정의 오류(false negative)’를 범했다. 마치 1997년에 IMF가 일어난 것처럼.     


이런 오류는 김성일(1538∼1593)의 잘못된 일본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명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시고 일본을 오랑캐의 나라로 깔보았다. 1543년에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받아들인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하찮게 보았다.


한편 1591년 11월에 홍문관 부제학 김성일등이 상소하였다. 상소 요지는 축성을 중지시키고,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선조수정실록 1591년 11월1일)  


축성부터 살펴보자. 1591년 7월에 선조는 성읍 수축을 지시하였다. 비변사가 육지의 방어에 힘쓰기를 청하자 호남·영남의 큰 읍성을 증축하고 수리하게 했다.


축성은 경상감사 김수가 제일 열심히 했다. 그러나 태평세월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백성들은 안일에 젖어 노역을 꺼리고 원성들이 높았다. 김성일은 영남에서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폐단을 논하였다. 이는 김성일 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상당수 관리들이 김성일과 같은 의견이었다.


이러자 김수는 ‘성을 쌓는 것에 대해 도내의 사대부들이 번거로운 폐단을 싫어한 나머지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저지되고 있다’고 장계를 올렸지만 갈등만 낳았다. 이토록 왜침 대비는 속도와 힘을 잃은 채 조선은 1592년 봄을 맞았다. 임금과 집권 여당은 일부 민심을 좇았고 나라를 재앙에 빠뜨렸다. 


또한 김성일은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된 인사라고 상소했다. 1591년 2월13일에 선조는 이순신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다. 종6품에서 정3품으로 7계단 뛰어넘은 파격 승진이었다. 그런데 2월16일에 사간원은 이순신의 파격 승진을 문제 삼아 체차를 간청했다. 선조는 ‘논하지 말라’ 했다. 2월18일에 사간원은 다시 간언했다. 그러나 선조는 단호했다. 
 


그런데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여수에서 근무한지 9개월이 지난 1591년 11월에 홍문관 부제학 김성일이 다시 이순신의 인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선조는 매우 불쾌했다. 아니 괘씸했으리라. 


1592년 3월3일에 선조는 김성일을 경상우병사로 임명했다.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는 즉시 김성일을 잡아들였다. 


1) 허성은 동인임에도 불구하고 황윤길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허성은 허균의 이복형이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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