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장성문화원 함안군유적 탐방 (2018.10.18.).

김종용 [ 전 장성군 노인회장/현 장성군게이트볼협회장

뉴스24 | 입력 : 2018/10/31 [13:09]

▲     ©뉴스24

 장성문화원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문화 탐방을 이번에는 경남 함안군으로 정하고 버스 2대로 출발이다. 공영갑 문화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함안군은 김흥식 군수 때 장성군과 자매결연을 맺어 상호문화교류를 하며 친교를 맺어온 자방자치단체라고 설명하고 초창기에는 많은 교류가 있었다면서 그 의미를 새겨 보자고 6가야의 역사도 언급하였다.


함안군은 임진란 때 화차를 발명하여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이룩하신 변이중선생이 군수 직을 마지막으로 보내셨던 곳으로 장성과는 인연이 깊은 곳이기에 함안탐방을 하게 됨을 장성 인으로서 뜻깊게 여겨본다.


4차선의 호남고속도로를 지나니 진주부터는 8차선고속도로로 많은 화물차량들이 비비왕래다. 이는 경남과 전남의 산업현장의 비교됨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한곳에 머무는 곳보다 다른 곳을 찾아 떠나고 싶은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며 평소에 나를 떠나 아름다운 풍경과 내가 사는 모습을 다른 곳과 비교하며 그곳의 풍광과 생활모습 역사 등을 보면서 나를 새롭게 조명해보는 것이라고 여겨본다.


오전11기경 함안 소재지에 도착하여 함안 박물관 앞에서 우정희란 여자 해설사가 우리를 맞아 안내한다. 1. 2호차가 나뉘어 박물관 뒷산 쪽에 많은 고분군이 보이는 곳으로 안내한다. 역사적으로 함안군은 중생대의 공룡화석 발자국부터 가야시대 함안 통일신라시대의 함안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함안, 현제의 함안으로 나뉘어 설명이 이어진다.

 

산등성이에 올라보니 많은 고분군이 우리일행의 눈을 맞는다. 함안군은 6가야 중에 아라가야에 해당한다. 산등성이에 올라보니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며 말이산 고분군이 100 여기라니 놀랍기만 하다. 무덤에서 각종 토기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데 1970년에 발굴시 이곳에서는 금관은 없었고 큰 무덤에서 순장자로 여겨지는 70기와 말 장식품들이 발굴되었다고 하니 왕릉이었음을 추측해 본다.

 

그런데 전남 나주의 마한시대의 능 안에서는 유물 중에 금관이 발굴되었기에 시대적으로 이곳 능과는 비교가 된다. 높은 지대에서 서편으로 멀리 보니 안산이 이곳을 향하여 2겹으로 둘러있음이 지관이 아닌 본인 눈에도 명당 터임을 짐작케 한다.

 

내려오면서 보니 박물관 뒤에  큰 터에 신축 공사를 하고 있기에 물으니 왕릉을 재현하는 공사라고 일러준다. 마치 공주시 송산리에 백제의 무령왕의 무덤을 만들 듯이 이곳에도 모형 왕릉의 전시관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 영남에 6가야의 명칭과 현제의 지역을 열거해 본다.


1.금관가야(김해) 2.아라가야(함안) 3.고령가야(경북 상주) 4.대가야(고령) 5.성산가야(경산) 6.소가야(고성)로 나누어진다. 우리는 아라가야 현장에 와서 역사를 새겨 보고 있다. 아라가야는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500여년 동안 낙동강 서남쪽일대에 분포되었던 작은 나라중 하나이다. 말이산 고분은 사적 515호로 찬란했던 아라가야 도읍지로 가야읍 내에 조성되어있다. 말이산의 의미는 왕족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무덤은 왕 무덤 같은데 부장품에 왕관이 없음은 일본이 도굴해갔는지 의문과 아쉬움으로 남는다.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발견되어 약500년 간 찬란했던 아라가야 고분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부장품들 중에는 말 투구 말 갑옷 새 모양 장식 마늘쇠등이 발굴되었으나 아쉽게도 금관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의 세계유산을 적어보면 1.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2.서울. 종묘. 3.경주. 불국사. 석굴암. 4.서울. 창덕궁. 5.수원. 화성. 6.화순. 고창. 고인돌.  7.경주. 역사지구. 8.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9.서울. 조선왕릉. 10.하회와 안동. 한국의 역사마을. 11.광주. 남한산성. 12.공주. 부여.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이다.

 

다음으로는 고려동에 고려진사 모은(茅隱)선생의 유적지를 찾아가면서 점심시간이 되어 맛있게 국밥을 들고 고려동에 도착하니 역사를 증명이나 하듯이 입구에 그 당시에 심었다는 오래된 백일홍나무가 우리를 맞는다.

 

이곳 모은 고려동의 약사는 약600년 전 고려말기 성균관진사로서 신왕조(朝鮮王朝)에 망복수의(罔僕守義)하여 함주(咸州)의 모곡에 와서 행적을 숨기고 거처한 뒤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그 옛집에서 전장(全庄) 고려전(高麗田)과 종사(宗祀)를 옛 규모 그대로 전승 보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보고 그 지조와 정신을 높이평가 하고 싶다. 현제까지 남아있는 유적은 자미정, 율간정, 계로당, 복정, 모계 정사 등 한옥과 호산정 등 우물 등이 보전해 오고 있다.

 

그러니까 고려충신 재영이문(裁寧李問)의 세계(世系)에는 절의숭상의 연원과 고려 말의 신구세력 교체기에 고려왕조를 부호하다가 반대당에게 박해를 당하고 끝까지 고려왕조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 복기 자에 담장을 쌓아 담 밖은 신왕조의 영토이고 담장 안은 고려인이 거주하는 고려동 분들이 다른 성씨보다 많았다는 설명이다. 집터는 금계 포란 형이란 명당 터란다.


다음으로는 오늘 마지막 코스인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절벽에 위치한  정자(亭子) 악양루(岳陽樓)로 향했다. 이곳 악양루는 남강절벽에 새워진 정자로 중국에 명승지 악양루와 비길만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악양루 아래로 큰 강 남강이 유유히 흐르고 전망으로는 넓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 넓게 트인 곳에 위치해있다.


한국전쟁 후에 복원하였고 1963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어 현제는 문화제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이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니 오늘도 문화원의 큰 행사가 원만히 진행  되었음을 회원 모두는 탐방의 내용에 만족을 느끼면서 고속도로 함안휴게소에서 남은음식을 만족하게 웃으면서 나누고 오늘 문화탐방은 값있는 시간으로 기쁨을 안고 오는데 차안에서는 김재선 부원장의 입담어린 유익한말로 마무리를 잘하면서 장성에 무사히 도착하여 회원 간에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며 다음을 기약하는 아쉬운 헤어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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