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歷史칼럼]‘부산 시민의 날’과 부산포해전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뉴스24 | 입력 : 2018/10/15 [11:07]

 

▲     © 뉴스24


10월4일 밤에 TV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잠깐 보았다. 10월5일 ‘부산시민의 날’과 연계하여 행사를 한단다. 문득 ‘부산 시민의 날’ 유래가 궁금했다. 몇 년 전에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글을 쓰면서 부산포 해전일인 음력 9월1일이 ‘부산시민의 날’이라고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산광역시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부산 소개 – 부산의 상징- 부산시민의 날’ 항목에 부산시민의 날  제정경위가 자세히 나와 있다.

 

“국제 항구도시로서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고, 화합 단결의 구심점을 마련하여 밝고 명랑한 정의사회와 위대한 부산을 건설함은 물론 조상 대대로 전래한 미풍양속의 숭상과 향토문화의 보존 전승을 위해 시민의 날을 제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1980년에 '부산시민의 날' 제정을 위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6개안이 제시되었다.
 
- 동래부사 송상현 공 순절일인 5월 25일 (음력 4월 14일)
- 충무공 이순신 장군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음력 9월 1일)
- 부산항 근대 개항일인 2월 27일
- 부산부에서 부산시로 승격일인 8월 15일
- 부산시민헌장 제정일인 8월 1일
- 부산직할시 승격일인   1월 1일

이상의 6개안을 문화위원회에 상정하였는데, 위원회에서는 부산진성, 동래성, 다대포성이 함락된 5월25일과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전일인
10월5일로 하자는 두 가지 안으로 집약되었다.
 
그러나 두개 안에 대한 격론이 벌어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비밀투표를 실시하여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음력 9월 1일)이 부산시민의 날로 결정되어, 1980년 9월10일 확정 공포되었다.”

 

1592년 7월8일 한산대첩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수군에게 ‘해전 금지령’를 내렸다. 이순신의 연합함대(전라좌우수군과 경상우수군 80여척)는 9월1일에  일본수군의 소굴인 부산포로 쳐들어가 왜선 470여 척 중 100여척을 불태웠다. 이 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 등 6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그런데 부산광역시 홈페이지의 ‘부산 소개 - 부산의 인물 – 충신열사’ 항목에 녹도만호 정운이 맨 먼저 소개되어 있다.

 

“정운은 영암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녹도만호였다. 임란 초기에 경상우수사 원균은 도망하여 곤양부근에 이르렀을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 때 이순신의 휘하 장수들은 경상도 진출에 대하여 의견이 대립되었다. 정운은  ‘경상도는 우리의 땅이 아닌가?’ 하면서 경상도로 출전을 주장하였다. 이에 이순신 장군의 경상도 출병이 이루어졌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 적진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해전에 참가 분전하였다. 8월 24일 연합함대는 부산포를 공격할 것을 결정하였고, 9월1일 이른 아침 부산포로 향하여 8시경 몰운대를 지나자 돌풍이 갑자기 일어나 함대를 정비하고 화준구미(花樽龜 尾)에 이르렀다. 여기서 왜선 5척을 만나고 다대포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왜선 8척, 서대포 앞바다에서는 왜선 9척, 절영도에서 왜선 2척을 만나 모두 격파하였다.


이어 부산포 내에 돌선하였다. 이때 적선 470여척이 선창 동쪽의 산기슭에 줄지어 정박하고 있었다. 우부장(右部將) 정운은 죽음을 무릅쓰고 분전하여 100여척을 격파, 많은 적군의 군기를 노획하고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정운은 회군할 때 적탄을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충장의 시호가 내렸으며, 영암의 충절사와 이곳 동래 충렬사에 봉안되어 있다.”

 

아니, 정운 장군을 부산광역시가 이렇게 현창하다니. 참으로 고맙다.
하기야 송상현 광장도 만들었으니 ‘역사 알리기’ 열기가  대단하다.   

‘부산시민의 날’ 유래를 안 김에 ‘광주 시민의 날’ 유래도 알고 싶어서
광주광역시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그런데 광주광역시 홈페이지에는 ‘광주시민의 날’ 항목이 없다. ‘광주의 인물’ 항목도 물론 없다.

 

인터넷에서 ‘광주시민의 날’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신문기사가 뜨는데 자세히 보니 경기도 광주시이다. 다시 ‘광주광역시 시민의 날’로 검색했더니 그때야 2018년 5월21일이 ‘제53회 광주광역시 시민의 날’이란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5월21일이 ‘광주시민의 날’이 된 유래는 아무리 검색하여도 찾을 수가 없다.  못내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