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 (13)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기사입력 2018/06/12 [15:13]

길 위의 호남 선비 -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 (13)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입력 : 2018/06/12 [15:13]

▲     © 뉴스24


1617년 1월21일에 윤선도는 함경남도 길주를 지나면서 시를 짓는다.    
정월 스무하룻날 
길주성 서쪽으로  말을 모네
구름 흩어져 햇볕도 좋고
온화한 바람에 날씨도 화창하네.

2월에야 윤선도는 유배지 경원에 도착했다. 그는 ‘우사(寓舍)에 머무르다’ 시 두 수를 지었다.
 
경원도 엄연히 우리나라 땅인데
어찌 고향 그리는 장음(莊吟)을 배우리. 1)
자식 생각에 어떻게 편히 주무실까
어버이 생각에 눈물 그치지 못하겠네.

먼저 윤선도는 어버이 생각부터 한다. 

죽고 사는 것은 푸른 하늘에 맡기고
주리고 배부름은 종들에게 맡길 뿐
늙으신 아버님 그리고 처자식을
걱정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주리고 배부름은 종들에게 맡긴다.’는 대구(對句), 참으로 좋다.   
 
손님 사절은 원래 정해져 있으니
나의 집에 그 누가 찾아 들겠는가?
몸과 마음 모두 할 일 하나도 없으니
서적이나 들춰보면 괜찮겠구나.
서적은 들춰 보는 일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나의 광벽(狂癖)이 좀 고쳐질까 해서

손님은 찾아올 수 없는 현실. 윤선도는 책 보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윤선도는 고독했다. ‘친구를 생각하며(思親舊)’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 변방의 요새
작은 성 모퉁이 작고 초라한 집
봄철에도 여전히 거센 눈보라요
낮에도 열리지 않는 사립문이라

가끔씩 개 짖는 소리 이웃에서 들려오면
혹시 친구라도 찾아왔나 생각 해 보지만
높은 산이 천 겹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어떻게 한 잔 술을 대작할 수 있으리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인근 종성(鍾城)에 유배중인 김시양(金時讓 1581~1643)과의 교류였다. 낙망자(樂忘子) 김시양은 1611년(광해군 3)에 전라도 도사(都事)로서 향시(鄕試)를 주관하였는데, 왕의 실정을 풍자하는 시제(試題)를 출제했다는 고발을 받았다. 이에 의금부가 극형에 처할 것을 상신(上申)하니, 광해군이 3일 동안 결정을 미루다가, 이항복의 도움으로 사형이 감해져서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2)


먼저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 2수 〔次樂忘韻 二首〕를 읽어보자. 3)


제1수

화창한 봄날에 눈이 아직 남아 있으니
누가 세상에 이런 추위가 있다고 믿을까
향초를 꺾어 허리에 차도 모두 좋으니
귀양살이 하면서 산에 갇혔어도 또한 편안하네.

나라 사랑 한다며 제 몸은 가볍게 알았다만
끝내 어버이 생각에 눈물을 참기 어려워라
석양 너머 아득히 나는 기러기 보며
진호루 위 난간에 기대어 서 있노라

제2수

보통 술잔을 들면 대번에 쭉 마시나니
이는 유주가 유난히 춥기 때문이라
풍백이 이따금 혼자서 심통 부리면
창문틀이 하루 종일 덜컹거리기도

집은 너무 조그만 해서 고개 숙이기도  이골 나고
밥은 모래 같아서 수저 뜨기도 어려워라
왕왕 사람 만나면 나에게 해 주는 말
국가의 성패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연이어 윤선도는 ‘면숙에게 부친 운을 써서 낙망자에게 답하다’,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 시를 연지었다. 김시양과의 두터운 교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윤선도는 ‘낙망이 산곡의 오농단억귀에 차운한 시를 보내며 화답을 청하기에〔樂忘次山谷吳儂但憶歸詩投贈索和〕’란 시를 짓는데 여기에는 윤선도의 충효가 잘 드러나 있다.
 
궁벽지고 황량한 곳 제아무리 싫어도
고향에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몸
늙은 아버님 몸이 항상 건강하시고
밝은 임금님 도가 어긋나지 않기만을

이렇게 1617년 한 해를 보낸 윤선도는 1618년에 처녀작인 시조 두 수를 짓는다. ‘견회요(遣懷謠)’, ‘우후요(雨後謠)’가 그것이다. 4)
  
1) 장음(莊吟)은 장석월음(莊舃越吟)의 준말로, 고향 그리는 노래를 말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월나라 사람 장석이 초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했는데, 월나라가 그리우면 월나라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에서 연유한다.

2) 김시양은 종성 유배 중에 『부계기문』을 지었는데 여기에는 명종 때 종성에서 유배 살이 한 미암 유희춘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편  김시양은 1618년에 영해(寧海)로 이배(移配)되었다.

3) 이 시에는 ‘낙망은 김시양의 호이다. 당시 종성에 유배 와 있었다.’라는 원주(原註)가 달려 있다.

4) 윤선도는 유배지 경원에서 한시(漢詩) 43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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