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가다 - 4회 소크라테스 감옥 (1)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기사입력 2018/01/23 [15:37]

[기행문] 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가다 - 4회 소크라테스 감옥 (1)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입력 : 2018/01/23 [15:37]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 감옥(Prison of Socrates)’을 보았다. 아크로폴리스 서쪽 출입구에서  도로로 내려가서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 오른 편에 있다.

▲     © 뉴스24

 

사진 1 소크라테스 감옥 가는 소나무 숲길

 

‘소크라테스 감옥’은 바위 언덕을 파놓은 굴 같다. 감옥은 3칸인데 창살이 있고 자물쇠로 잠겨 있다. 오른편 끝 방 안쪽에는 골방이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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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소크라테스 감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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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감옥 오른 편 끝 방 안쪽의 골방

 

 아, 이곳에서 거리의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69∼399)가 독배를 마셨구나. 한 달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제자들과 대화하였구나. 도망가라는 권유도 뿌리치고 명예롭게 죽음을 택했구나.  
 
BC 399년 봄에 시인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다.1)

 

이 당시 아테네는 쇠락과 혼란의 시기였다.  BC 43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430년에 아테네에 전염병이 돌아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아깝게도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룬 정치가 펠리클레스도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전쟁은 BC 404년까지 27년간 계속되었는데 아테네가 패전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30인 참주 정권을 수립했다. 30인 참주는 공포정치를 하며 민주파 시민 1,500명을 죽였다. 처형된 사람 수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마지막 10년 동안 죽은 아테네인 보다 더 많았다 한다. 게다가 아테네 시민 수를 3천명으로 제한하여 정치 참여를 막았다. 이러자 시민들이 저항했고 BC 403년에 민주파가 참주를 몰아내고 민주정치를 회복했다. 
 
고발장에는 “멜레토스는 소프로니코스의 아들인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선서 진술을 함. 소크라테스는 첫째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법을 어겼고, 둘째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법을 어김. 구형은 사형 ” 2)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 있는 시민법정에 출두했다.  재판은 하루 동안 진행되었는데 먼저 고발인들이 두 번의 연설을 통해 고발이유를 밝혔다.

 

그 다음에 소크라테스가 변론을 했다.

 

배심원들은 501명중 유죄 281명, 무죄 220명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형량을 정하는 재판이었다. 고발인은 사형을 주장하고 소크라테스는 처음에는 표창을 받아야 한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벌금형을 제안했다. 배심원들은 501명 중 사형에 360표를 던졌다. 유죄라는 배심원보다 79명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한 달간 집행이 미루어졌다. 이 시기는 아폴론 신의 탄생지 델로스 섬에서 종교의식이 있는 기간이어서, 이 기간 중에는 사형집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크리톤을 비롯한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도주를 권유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했다.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네”


BC 399년 5월7일 소크라테스는 한 달 동안 제자들과 즐겁게 담소하다가 독당근 차 햄록을 마시고 죽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민주 법정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떤 이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BC 427∼347)은 『대화』 편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감옥 그리고 죽음을 기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자세히 살펴보자.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말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 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럴듯하게 꾸며 낸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이 담긴 이야기라곤 한마디로 하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변론하면서 ‘아테네 시민 여러분’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다수결에 의해 판결이 좌우되는 배심원제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이고 있다.    


(계속됩니다.)

1) 고발장은 시인 멜레토스 명의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민주파 유력 정치가 아니토스와 웅변가 리콘 3명이 고발자였다.   

2) 소크라테스 아버지 소프로니코스는 석공(조각가)이었고, 어머니는  산파 파이나레테이다.  소크라테스도 한때 석공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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