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장성향교 문화탐방 (2017. 9.17.-18)

김종용, 장성군 게이트볼 연합회장

뉴스24 | 기사입력 2017/12/11 [11:17]

[기행문] 장성향교 문화탐방 (2017. 9.17.-18)

김종용, 장성군 게이트볼 연합회장

뉴스24 | 입력 : 2017/12/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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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성향교에서 유적지 순례를 위해 1박2일 여정으로 문영수 전교님의 큰 배려로 안동과 경주를 답사코자 출발이다.

우리는 순창휴게소에서 간식을 하고 88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를 거처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 하회마을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내면서 백암 이순신장군을 도왔던 서애 유성룡의 고향으로 전국관광객이 많이 다녀간 한국의 역사마을이다.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곳이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廻)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이곳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회마을은 풍수 지리적으로 태극 연화부수형에 해당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집들의 좌 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먼저 유성룡 선생의 종택 인 충효당에 들렸다.
충효당의 당호는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가르침을 강조 한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초가집들의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송림 숲 저편에 깎아지른 절벽을 스쳐 흐르는 강물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듯한  부용대를 왼편으로 스치면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북쪽 산언덕에 곤비 하나가 크게 세워져 있어 확인해 보니 유성룡 형님의 비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 식당가에서 맛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이번 여정에는 없는
산 넘어 사적 260호인 병산서원을 가보자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비포장으로 좁은 산길을 고개를 넘고 돌아 도착하였다.
이곳은 풍산읍에 있던 서애 유성룡 선생을 모셨던 풍악서당을 1572년  이 자리로 옮겼으며 후에 1863년(철종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이곳역시 필암서원 처럼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헐리지 않은
47개 서원과 사당중 하나이다. 바로교육의 현장처럼 오늘도 어느 대학에서 나와 학술 세미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서원에서 앞을 보니 안산은 수려하고 화해마을로 흐르는 큰 냇물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며 그림처럼 아름답게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사적 170호로 지정되어 있는 도산서원에 가서 분향차례이다.
우리 모두는 누렇게 익어가는 추수철의 들녘을 지나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도산서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70여 차례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인격도야에만 힘쓰고 이 나라 교육 및 후진양성에 힘쓰신 이황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즉 유학사상의 큰 핵을 이뤄 만대에 정신적 사표가 된 이곳 도산서원의 현판은 한석봉의 친필이며 선조임금이 사액 하였다고한다.
선생의 중요 도서로는 개몽전의, 성학십도, 도산십이곡, 주자서 절요,
심경후론, 예안 향약 자성록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정숙한 마음가짐으로 예를 가추고 다음은 선비 수련원으로 자리를 옮겨 교양강좌 시간을 갖고 김정희 강사님의 스라이드 화면으로 장시간 명 강의가 이어졌다.
명제로는
1) 이 시대 우리 동지들의 사명
2) 우리는 이시대의 동지
3) 우리 동지들의 바람직한 삶과 충족의 건
4) 우리사회의 우선과제와 동지들의 사명
5) 선비 퇴계선생의 삶
6) 퇴계의 고향(안동도산)에서 10년째 지낸 까닭 등
7) 21세기에서도 통한다.
8) 퇴계의 향기로운 삶의 이모저모 세상에 전파하자.
실천방안 등의 강의가 끝난 뒤 본인은 퇴고 왕복 서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퇴고왕복서가 통신망이 용이하지 않을 때 1000여 차례나 많은 횟수가 이뤄졌다는데 교통이 좋지 않은 그 시기에 어떤 방법으로 전라도와 경상도가 서신을 주고받았는가에 대해 문의한즉 전라도와 경상도가 직접적인 교신이 아닌 장성에서 서울로 가는 편에 보내면 서울에서 안동으로. 반대로 안동이서 서울로 가는 편에 보내면 서울에서 장성으로 연락망이 이뤄졌다는 설명이 이해를 도아 주었다.
현제 남아 있는 서신은 약 100여 통 이라는 설명이다.
저녁식사는 안동고등어가 올라와서 맛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바닷가가 아닌 육지인 안동고등어가 유명하게 된 연유는 바다에서 내륙 안동 까지 오면 해산물이 상하니까 당시부터 염장 술이 발달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황은 18선정의 한분이요 이언적 선생의 제자이다.
오늘의 숙소는 안동 땜 상류에 자리한 한국국학 진흥원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선조들의 유산을 수집보관하고 과학적으로 정리 보존하여 학계에 교육 자료로 보급함으로서 국학의 현대화를 지향하고 있는 곳이다. 국학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또 연구하고 국학 자료의 활용으로 전통문화를 교육 연수하는 시설로 우리 고장에는 없는 부러운 시설이다.
일반인들이 보관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맡아 보관 관리해주는 기관이다. 이곳에서 숙박하고 아침을 마친 우리는 안동 땜 아래에 있는 유명한 월영교(月映橋)로 향했다. 안동 땜은 장성 땜 보다는 큰 규모로 땜 아래로 흐르는 물은 깊고 맑은데 잉어들이 춤을 추며 헤엄치고 교량 중간에 월영정이 있어 올라보니 수량은 한강을 연상하리만큼 큰 강물이 유유히 흐르며 우리네 마음을 사로잡았다. 월영교는 길이가 385m 너비가 3.6m로 월영교라는 이 멋진 명칭은 시민들의 의견과 땜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옮겨진 인연 등 호수에 뜬 달빛을 기억함에도 있겠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대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1998년 이들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아내가 머리를 뽑아 삼았던 미투리 신발이며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한글 편지가 412년 만에 나왔기에 월영교란 명칭이 탄생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에 달그림자가 강물에 비친다는 월영교를 걸으면서 시상에 젖어 보기에 충분한 풍광으로 감탄사가 절로나리만큼 명소임에 틀림없다. 다리건너에는 석빙고가 있다는데 시간관계로 가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겼다.  이제 우리일행은 안동 땜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는데 유기종 회원이 전에 와본 경험을 되살리면서 이곳에 대한 관광 안내를 한다. 월영교의 설명과 법흥사 7층 석탑이 있는 임청각에 대한 내역과 이상용 독립투사가 살았던 집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의 고택을 찾아 그 후손으로부터 스라이드를 통해 선조들이 구국운동을 했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독립투사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왜정시대 그 옆으로 철교를 놓아 맥을 끊었다는 설명과 함께 문제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이곳의 철로 이설계획도 확약했다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문영수 전교와 유기종씨는 장성문화원에서 조직했던 향토 사랑회를 통해 전국문화유적지를 순회하면서 많은 지식을 회원들과 함께 쌓고 있기에 오늘도 우리에게 이 지역에 대한 소개를 실감나게 전해 주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경주로 가면서 들려가자며 옥산서원을 찾았다.
이곳 옥산서원은 경북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사적 154호로 퇴계선생의 스승이신 이언적선생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 (선조5)에 지방 유림들의 뜻에 따라 창건한 사액서원이다.
이곳역시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할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중 하나이다. 이곳 옥산서원은 선조임금이 서원이름을 내렸다.
이곳은 주위 경치도 좋고 특히 계곡이 깊어 물소리가 아름다울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그분의 높은 학문의 뜻을 새기면서 옥산서원을 뒤로하고 경주에 도착 왕릉 군이 많은 경주 향교를 찾았다. 이곳 향교는 전묘후학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 우리 장성향교와는 달랐다. 우리는 그곳 대성전에서 예를 갖추고 향교를 나와 점심을 맛있게 들고 근처에 있는 첨성대를 들려 경주 지진 때 조금 손상을 입었다는 말에 자세히 살펴보면서 서로가 기념촬영도 하였다. 
석빙고가 있는 곳을 스쳐지나 이제 마지막 코스인 경주박물관에 들려
보니 청동기부터 신라 천년의 찬란했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신라 문화의 보고가 아닌가.
이곳에는 11개의 국보와 29개의 보물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밖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복제품을 똑같은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어 불국사를 가지 않고도 쉽게 볼 수 있는 유물전시관의 현장이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자리하고 있는 에밀레종을 살펴보고 귀향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회원들은 즐거움을 더하자며 노래자랑으로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번 장성향교의 배려로 1박2일의 문화탐방은 실로 보람되고 쉽지 않은 여정이었기에 전교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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