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 청백과 효를 겸비한 선비, 송흠 (3)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입력 : 2017/06/26 [21:53]
효헌공 송흠
  
▲     © 뉴스24

관수정 앞 한 곳에는 비석이 하나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의 나이 87세인 1545년에 남겼다는 가훈(家訓)이다. 비석 앞면에는 원문이 적혀 있고 뒷면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사진 1)

주자의 시에 이르기를 “모든 일은 충과 효 밖에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대저 사람이 사람됨은 다만 충과 효에 있을 따름이다. (중략)

왜냐하면 널리 배우고 신중히 생각하며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여 욕심이 적은 것이 바로 충성하고 효도하는 사람이다. (중략)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어느 것이나 충성과 효도 가운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니 충성과 효도를 한 뒤에야 나는 반드시 사람이라고 말하겠다. (중략) 나의 자손들은 삼가하고 경계할진져.

명종 원년(1545년) 정월16일에 노옹은 병풍에 섰다.

그의 가훈대로 송흠은 효를 벼리삼고 실천하여 효헌공(孝憲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송흠은 1534년, 그의 나이 76세에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었는데, 당시 모친의 연세가 99세였으므로 공이 상소하여 어머니 봉양을 위해 사직 윤허를 받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효성을 다해 봉양하여 모친 곁을 떠나지 않았고, 또 추위와 더위에도 의관을 벗지 않았으며 음식물은 반드시 먼저 맛을 본 뒤에 올렸다. 모친이 101세에 임종하니 초상을 극진히 치렀고 제사를 경건하게 지냈다.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호산춘 술을 빚다.

송흠은 나이 57세인 1515년 여산군수 시절에 호산춘(壺山春)이란 술을 만들어 예산을 절약하였다.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에 나온다.

여산군수(礪山郡守)가 되었을 때, 고을이 큰 길 옆이어서 손님은 많은데 대접할 것이 없어, 특별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호산춘(壺山春)’이라 했다.

호산은 여산의 별호(別號)로서 여산은 물맛이 좋아서 호산춘은 서울의 약산춘, 충청도의 노산춘과 함께 3대 민속춘주(春酒)로 이름을 날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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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지당 유고』에는 호산춘 제조법이 한글과 한문으로 적혀 있다. 특히 술 담그는 법을 여인들도 알 수 있도록 언문으로 적어 놓은 것은 매우 사려 깊다. (사진 2)

한말 술을 빚으려면 따로 쌀 닷 되를 다섯 번 빻고 백번 씻어서 물에 담가 하룻밤을 지나서 곱게 빻은 가루를 채에 쳐서 찬물 여섯 사발 반을 죽을 쑤어 식은 뒤에 미리 고운 누룩으로 곱게 빻은 가루 한 되를 6-7일 동안 햇볕에 쬐었다가 그것을 절반으로 나누어 밀가루 두 홉과 함께 쌀죽에 넣어서 술을 제조하는 데, 6-7일이 지나면 쌀을 한말을 전과 같이 빻고 씻어서 쪄 익으면 밥을 만들어 가지고 식기를 기다려서 찬물 열 두 사발과 누룩 가루로 이전에 나누어 두었던 5홉을 콩과 함께 밥에 골고루 섞어 빚어서 6-7일 후에 쓴다.

또한 농업 관련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1827년에 지은 『임원십육지』(이효지 등 역, 교문사, 2007년) 제7권에는 여러 종류의 전통주가 나오는 데 이중 주류(酎類)로 호산춘등 5가지 술 (호산춘방, 잡곡주방, 두강춘방, 무릉도원주방, 동파주방)이 나온다. 여기의 첫 번째 주류로 소개되는 것은 호산춘방이다.

송흠이 만든 호산춘에서 청백정신을 다시 배운다. 청백리란 청렴결백한 것만이 아니라 예산을 절약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관료임을. 

여산군수 시절에 송흠은 청백리에 또 뽑혔다. 1515년 2월16일자 중종실록에 나온다. 2) 

1) 춘(春)자가 붙은 술은 2차 중양주로서 덧술을 두 번 세 번하여 증류주를 만든 청주를 말한다.
2) 중종 21권, 10년(1515년) 2월16일 2번째 기사
예조 판서 김전 등을 청백리로 뽑아 향표리를 내리다

전교하였다.

“청백 탁이(淸白卓異)한, 예조 판서 김전·도승지 손중돈·좌부승지 조원기·승문원 판교 강숙돌에게는 각각 한 자급을 더하고, 충청도 절도사 김연수에게는 당표리(唐表裏 : 중국산 안팎 비단 옷감)를 하사하며, 담양  부사 박상 · 여산군수 송흠에게는 각각 향표리(鄕表裏 : 국산 안팎 비단 옷감)를 하사하라.”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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